[문예마당] 가을 소고
어머니의 묘소를 내가 사는 근교 공원묘지에 모셔 놓고도 여름 내내 한 번도 찾아가 뵙지를 못했다. 어머니는 생전에 “나는 너 오기만 기다린다”며 늘 현관 밖에서 나를 기다리곤 하셨다. 추석에 가족들과 함께 산소를 찾는 것도 좋지만 그 전에 나 혼자 먼저 어머니를 찾아가 ‘모녀 타임’을 가져야 할 것 같아 어머니가 생전에 좋아하시던 커피와 국화꽃 한 다발을 사 들고 산소로 향했다. 오랜만에 방문한 공원묘지에는 변화가 있었다. 묘지 확장을 위한 개발공사가 한창이었다. 지난여름 세상을 떠난 많은 사람이 사각 모양의 비석을 이고 죽음의 선배들과 함께 잠들어 있는 광경이 가장 눈에 띄는 변화였다. “아니, 이렇게나….” 놀라며 쭉 둘러보는 새 비석 가운데는 무슨 연유인지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사람이 꽤 많았다. 사람이 세상에 올 때는 순서대로 오지만 세상을 떠날 때는 순서 없이 간다는 말이 새삼 실감 났다. 올여름에는 유난히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도 많았고, 불경기를 지나면서 광란의 총기 앞에 무참히 생명을 빼앗긴 사람도 적지 않았다. 부고가 끊임없이 이어지던 여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공동묘지는 고금의 사람들이 같이 사는 장소다. 먼저 간다고 아쉬워할 것 없고, 뒤에 간다고 좋아할 것도 없다. 앞으로 같은 장소에서 같이 살게 될 것이므로…. 수없이 깔린 묘비를 둘러보면 인간의 죽음이란 가을 나무에서 하나, 둘 떨어지는 낙엽과 다를 게 없는 자연의 조화라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내용의 묘비명을 읽어 보면서 책에서 재미있게 읽었던 묘비명들이 떠올랐다. 헤밍웨이는 아내의 묘비에 “조용히 걸어 가시요. 이 사람이 발자국 소리에 놀라 잠이 깨는 날이면 나는 또 이 사람에게 바가지를 긁힐 테니까요”라는 글을 새겼다고 한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끝날 줄 알았지”다. 또 스탕달의 묘비에는 “살았노라 썼노라 그리고 사랑했노라”고 쓰여 있고, 교육의 성자 페스탈로치의 묘비엔 “모든 것은 남을 위해서였으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글이 있다. 그런가 하며 미국 국립묘지에 있는 무용용사 묘비에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미국의 무명용사가 이곳에 명예롭게 잠들다”라고 적혀 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주먹을 쥐고 간 사람”이라는 재미있는 내용의 묘비명도 있다고 한다. 이날 읽어본 묘비명 중에는 “아! 어머님”이라는 짧은 절규가 가장 찡하게 와 닿았다. 묘비명은 망자의 유언에 따른 그의 좌우명일 수도 있고, 자손들이나 지인들이 그의 공덕을 기려 새기기도 한다. 어떻든 묘비에 새겨진 글은 살아서 행동했던 죽은 자의 명함이고 얼굴이다. 오랜만에 어머니 곁에 앉으니 함께 한 모녀의 세월을 뒤돌아보게 된다. 자식을 위해 헌신하신 어머니의 거룩한 모정에 그리움이 가득 차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평생을 기다림의 시간만 안겨 드렸던 불효를 아픔으로 반성한다. 죄송하다, 미안하다, 보고 싶다는 말을 속으로만 삼키고 있을 때 “얘야, 괜찮으니 마음 편히 가져라. 기다리는 것은 언제나 제시간에 오지 않는다는 것을 난 알고 있단다 ”하는 어머니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 같아 사방을 돌아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는 어느덧 가을이 와 있었고 , 길게 가을 구름이 깔렸다. 가을은 대기의 열을 식힌다. 가을 하늘 아래 달라지는 자연의 모습은 경이롭다. 아직은 단풍이 들지 않고 무성한 잎들이 떨어지지 않고 있지만 곧 가을이 깊어지면 모든 것은 떨어지며 다시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네 인생도 가을 낙엽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때가 되면 우리도 흙으로 돌아간다. 가을이 오면 우리의 정서는 으레 허망함과 쓸쓸함, 애상과 애수를 느끼지만 가는 세월이나 자연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하늘이나 나무,숲, 자연은 자기의 모습을 그대로 꾸밈없이 보여 줄 뿐이다. 자연은 꾸미지 않는다. 있는 것을 없는 척, 없는 것을 있는 척, 추한 것을 아름다운 척 치장하거나 위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굳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고 애쓰며 서두르지도 않는다. 때가 되면 싹이 트고, 잎이 지고, 꽃이 핀다. 자연이 위대한 것은 바로 이런 자연스러움이고 또 그 자연스러움이 겸손이다. 겸손은 자연처럼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도시의 문명에 휩쓸려 우리는 중요한 것을 까맣게 잊고 살 때가 많다. 그런 우리에게 가을은 어떻게 살고 어떤 죽음을 남겨야 하는가를 낙엽을 통해 가르침을 주며 인생을 생각하고 배우라고 한다. 슬기로운 눈을 떠 자신을 다시 살펴보게 하는 은혜로운 계절이다. 낙엽처럼 나도 누군가의 아름다운 배경이 되고 뒷받침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싶다. 노력해야겠다는 의욕이 바로 소망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원천이 될 것이다. 겸손으로, 따뜻함으로, 온유함으로 곱게 물든 인간 단풍이 되어 사람들 가슴에 그리움으로 오래오래 간직되고 싶다는 기도를 이 가을에 드리고 싶다. 김영중 / 수필가문예마당 가을 소고 가을 낙엽과 가을 소고 가을 하늘